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리뷰 사건 사고

이양길 토막 살인 사건

IT Knowledge Share 2021. 9. 22. 18:3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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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개인적인 감정이입이 있을 수 있습니다.

* 분노 지수: ★★★★

 

1970년대에 벌어진 사건사고로, 범행 수법이 잔혹합니다.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, '시신 토막 유기' 방법이 전 국민을 분노로 휩싸이게 만들었습니다.

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바로 철강 회사에서 압연공으로 일하고 있었던 이양길(당시 25세)입니다. 그는 당시 한 살 연하였던 피해자 양 씨와 사귀고 있었으며, 양 씨는 이양길의 잦은 데이트 폭력과 집착으로 인해 결별을 통보합니다.

 

이별 통보 후, 더 이상 이양길을 볼 필요가 없던 피해자 양 씨가 무슨 까닭으로 그를 다시 만난 것일까요?

 

이양길은 1979년 6월 16일 오전 11시 경 피해자 양 씨에게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양 씨의 가족사진을 돌려주겠다면서 그녀를 꾀어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습니다. 이때를 기회라고 생각했던, 이양길은 양 씨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다시 사귀자면서 애원을 했다고 합니다. 하지만, 양 씨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. 데이트 폭력과 잦은 욕설로 지칠대로 지쳤던 양 씨는 그의 애원을 뿌리치고, 새 출발을 원했을 것입니다.

 

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하는 이양길......!

이양길은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양 씨에게 앙심을 품고, 그의 태도는 갑자기 돌변했습니다. 그는 수건으로 양 씨의 입을 막고 나일론 끈으로 손과 발을 묶어 협박을 했고, 그녀에게 잘못했다고 빌라는 등 싸이코 기질을 보였습니다. 그럼에도 양 씨는 거절하며 반항을 했다고 합니다. 양 씨 입장에서는 사진 받으러 왔다가 손과 발이 묶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그를 매우 원망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. 이양길은 양 씨의 몸에 담요를 덮어씌운 채로 밖에 나갔으며, 그 사이에 축구 경기는 보고 싶었는지, 약 1시간 정도 경기를 보고 다시 양 씨를 체크하러 왔으나, 그녀는 이미 질직사로 숨져 있었습니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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양 씨의 시신을 유기하기 위한 이양길의 행각은 그의 잔혹성을 보여줬습니다.

 

이양길은 당일 오후 6시 경 인근 사직시장에 들러 비닐을 구입합니다. 다락 바닥에 비닐을 펴 그 위에 피해자의 시체를 올려놓고 집에 있던 "면도날과 톱"으로 시신을 토막내기 시작했습니다. 흡사 공포 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들입니다. 그는 하수구와 공중 재래식 화장실, 교각 등지에 시신을 분산시켜 유기했습니다.

그 해, 6월 20일 하수구 인근에서 놀던 국민학교 학생들이 피해자의 시신 일부를 발견하면서 사건이 세간에 드러나게 됩니다. 신원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됐었지만, 다행이도 잘려진 손가락의 일부분에서 지문 채취가 가능해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 양 씨의 신원으로 밝혀지게 됩니다. 경찰은 여러 조사 끝에 양 씨의 전 애인 이양길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며, 그의 집을 압수수색한 결과, 경찰은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여지는 나일론 끈 등을 발견했습니다.

 

마침 이양길은 사건 전후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퇴직금을 받아 어디론가 잠적한 상태였습니다. 경찰은 이양길을 전국에 지명수배하게 됩니다.

이양길은 지명 수배 이후로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. 그는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며 살 궁리를 했는지, 경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게 됩니다. 그는 뭔가 낌새를 느꼈는지 경산으로 가는 계획을 바꾸고, 동대구 역에서 갑자기 내린 후, 근처 산을 타기 위해 내려 역 앞길을 걸어가게 됩니다. 그러던 중 3명의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하자 '이성길'이라고 가짜이름을 댔다고 합니다.

 

3류 액션영화 장면보다도 더 못한 찌질이 이양길의 최후는......?

형사들이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고 하자, 그는 형사들을 밀치고 달아나 동대구역 건너편에 있는 황금식당 앞까지 쫒기게 됩니다. 순간 자살을 생각했는지(?) 길옆에 있는 맥주병 상자에서 빈 맥주병 1개를 깨들고 자신의 목과 배 등을 찔러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저항하다가 결국 격투 10분만에 검거됐다고 합니다. 역시나 남은 죽이면서 본인이 죽을 배짱은 없었나 봅니다. 체포 당시 이양길의 소지품으로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도장과 현금 54,000원이 있었다고 합니다.

 

결국 이양길은 자신이 양 씨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으며, 그의 자백에 따라 부산 내성국교 변소 분뇨 탱크에서 토막 난 시체의 머리와 허벅지 부분 등을 찾아내게 됩니다. 얼굴은 살이 썩어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었으나 긴 머리카락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. 경찰은 이곳에서 피해자 양 씨의 것으로 보이는 깨진 손거울, 손수건, 스타킹도 함께 찾아냈습니다.

 

이양길은 1980년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으며, 1985년 대구교도소에서 처형당했다고 합니다. 억울한 죽음을 당해 고인이된 피해자 양 씨의 명복을 빌며, 다시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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